史記 (사기, Shǐjì) 司馬遷 (사마천)

史記(사기) 司馬遷(사마천)

Alternative Names (異名):
史记(Shǐjì), 太史公書(태사공서), 太史公記(태사공기)

구분: 통사
저자: 사마 천(司馬遷)
시대: 중국 전한


중국 전한(前漢)의 사마 천(司馬遷)이 상고시대의 황제(黃帝)~한나라 무제 태초년간(BC 104~101년)의 중국과 그 주변 민족의 역사를 포괄하여 저술한 통사.

中国司马迁所著。 《史记》是中国的第一部通史。


사마천(司馬遷)에 의해 한(漢)나라 무제 때 쓰여진 역사서로 본격적인 저술은 BC 108~BC 91년 사이에 이루어진 것으로 보고 있다. 사마 천은 저술의 동기를 '가문의 전통인 사관의 소명의식에 따라 《춘추》를 계승하고 아울러 궁형의 치욕에 발분하여 입신양명으로 대효를 이루기 위한 것' 으로, 저술의 목표는 '인간과 하늘의 관계를 구명하고 고금의 변화에 통관하여 일가의 주장을 이루려는 것’으로 각각 설명하는데, 전체적 구성과 서술에 이 입장이 잘 견지되었다. 이 책의 가장 큰 특색은 역대 중국 정사의 모범이 된 기전체(紀傳體)의 효시로서, 제왕의 연대기인 본기(本紀) 12편, 제후왕을 중심으로 한 세가(世家) 30편, 역대 제도 문물의 연혁에 관한 서(書) 8편, 연표인 표(表) 10편, 시대를 상징하는 뛰어난 개인의 활동을 다룬 전기 열전(列傳) 70편, 총 130편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태사공서(太史公書)(혹은 태사공기 太史公記)로 불리었으나 위진(魏晋)시대에 와서「사기」라고 불리게 되었다. 이 것은 전한 선제(宣帝) 때 그 외손 양운에 의해 세상에 알려졌다. 하지만 일찍이 적지않은 부분이 결락되어 후한(後漢) 반고(班固)의 ≪한서(漢書)≫ 에는 벌써 10여 편이 없어졌다고 하였는데 잃어버린 효무본기(孝武本紀)는 후세인이 봉선서(封禪書)의 기술을 이용하여 보필되었다. 그리고 일부 초고(草稿)가 완전하지 않은 부분은 저소손(椧少孫) 등이 보필하였다. 또한 당나라 사마정(司馬貞)은 삼황본기(三皇本紀)를 저술하여 오제본기(五帝本紀)앞에 넣었다.

옛부터 오늘날까지 사기에 대한 많은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고 이 저술에 대한 다양한 설과 평가들이 제시되고 있다. 우선 사기의 구성 자체가 '우주의 축영'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이는 사기의 각 편의 숫자가 모두 우주수와 관련될 뿐만 아니라 본기는 북극성에, 세가는 28수(宿)에 각각 대응되기 때문이다. 또한 실제로 사기의 <천관서>에는 천문의 대변화 주기에 따라 인간의 역사도 변한다는 관념이 보인다.

그러나 사기에 대한 또 다른 평가와 시각에서는 사기가 인간과 하늘의 상호관계에서 전개되는 인간의 역사를 냉엄하게 통찰하여 초자연적인 힘 또는 신에서 해방된 인간 중심의 역사를 발견하였다고 보기도 한다. 따라서 사기는 열전에 가장 많은 비중을 할애하였고, 신비하고 괴이한 전설과 신화에 속하는 자료는 모두 배제하고 주로 유가 경전을 기준으로 합리적으로 믿을 수 있다고 판단된 자료만 취록하였다는 것이다. 또 열전의 첫 머리에 이념과 원칙에 순사한 백이(伯夷) ·숙제(叔齊)의 열전을, 마지막에 이(利)를 좇는 상인의 열전 화식열전(貨殖列傳)을 두어, 위대한 성현뿐 아니라 시정잡배가 도덕적 당위의 실천과 이욕적 본능 사이에서 방황하고 고뇌하는 생생한 모습을 제시함으로써 사기는 ‘살아 숨쉬는 인간’에 의해서 역사가 창조된다는 점을 극명하게 보여준다는 것이다.

사기가 시와 산문의 이상적 결합으로 평가되는 문장을 통하여 더욱 그 빛을 발하고 있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이는 사기가 전체 구성은 물론 세세한 글자 하나하나까지도 치밀한 의도 하에 적어넣어 자연스레 독자를 무한한 감흥으로 이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사전문학의 극치로 평가하는 사람도 있지만, 이것은 단순한 문장의 기교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역사에 대한 이성적 통찰과 감성적인 이해를 통한 추체험의 발로였고 전편, 특히 각편에 삽입된 ‘태사공왈’란에 저자 자신의 평어 부분에 흐르는 예리한 사안과 비판정신도 바로 여기서 비롯된 것이라 보기도 한다.

한편, 이 책의 충만한 비판정신을 궁형을 당한 사마 천의 울분에서 비롯된 무제의 비방으로 해석하여 ‘비방의 서’로 부르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인간의 위대함과 어리석음, 이욕 및 폭력과 도덕적 이상의 갈등에서 발전하는 역사를 준엄하게 지적할 뿐, 울분적인 비방의 차원은 결코 아니였다고 보기도 한다.


구성 및 관련 고사성어

本紀 : 총 12편. 중국 역사 초의 5제(五帝)에서 한(漢) 무제(武帝)까지 왕(王)들의 연대기.

001 五帝本紀

002 夏本紀(하본기)

003 殷本紀(은본기)

酒池肉林(주지육림) | 炮烙之刑(포락지형) |

004 周本紀(주본기)

丹脣皓齒(단순호치) | 穿楊貫蝨(천양관슬) |

005 秦本紀

006 秦始皇本紀

指鹿爲馬(지록위마) |

007 項羽本紀(항우본기)

破釜沈船(파부침선,pòfǔchénzhōu) | 壁上觀(벽상관) | 作壁上观(zuòbìshàngguān) | 鸿门宴(홍문연,Hóngményàn) | 项庄舞剑 意在沛公(항장무검 의재패공) | 沐猴而冠(목후이관,mùhóu'érguàn) | 傾國(경국) |


008 高祖本紀

009 呂太后本紀

010 孝文本紀

011 孝景本紀

012 孝武本紀

: 총 10편. 본기에 나오는 제왕 및 제후들의 흥망을 정리하여 보여주는 연표이다.

013 三代世表 | 014 十二諸侯年表 | 015 六國年表 | 016 秦楚之際月表 | 017 漢興以來諸侯王年表 | 018 高祖功臣侯者年表 | 019 惠景閒侯者年表 | 020 建元以來侯者年表 | 021 建元已來王子侯者年表 | 022 漢興以來將相名臣年表 |

: 총 8편. 역대의 정책과 제도, 문물의 발달사 및 전망을 다룬다.

023 禮書

024 樂書

025 律書

026 歷書

027 天官書

028 封禪書

029 河渠書

030 平準書

世家(shìjiā) : 총 30편. 역사적으로 중요하게 여겨진 제후(諸侯)들에 대해 다룬다.

031 오태백세가(呉太伯世家)

032 제태공세가(齊太公世家)

033 노주공세가(魯周公世家)

034 연소공세가(燕召公世家)

035 관채세가(管蔡世家) 관숙선・채・조

036 진기세가(陳杞世家) 진・기

037 衛康叔世家(위강숙세가)

038 宋微子世家(송미자세가)

麥秀之嘆(맥수지탄) |

039 晋世家(진세가)

040 초세가(楚世家)

041 월왕구천세家(越王句践世家) 구천

042 정세가(鄭世家)

043 조세가(趙世家)

044 위세가(魏世家)

045 한세가(韓世家)

046 전경중완세가(田敬仲完世家) 전제

047 공자세가(孔子世家) 공자

048 진섭세가(陳渉世家) 진승

049 외척세가(外戚世家) 외척

050 초원왕세가(楚元王世家) 유방의 혈족

051 형연세가(荊燕世家) 류가・류택

052 제도혜왕세가(齊悼恵王世家) 한나라의 제후왕

053 소상국세가(蕭相國世家) 소하

054 조상국세가(曹相国世家) 조참

055 류후세가(留侯世家) 장량

056 진승상세가(陳丞相世家) 진평

057 강후주발세가(絳侯周勃世家) 주발

058 량효왕세가(梁孝王世家) 한나라의 제후왕으로 양나라에 대해

059 오종세가(五宗世家) 경제의 아들

060 三王世家(삼왕세가) 무제의 아들

列傳 : 총 70편. 왕과 제후 외에 역사적으로 중요한 개인들을 다룬다. 대상은 영웅, 정치가, 학자, 군인, 일반 서민까지 다양하다

061 伯夷列傳(백이열전)

以暴易暴(이포역포) |

062 管晏列傳(관안열전)

管鮑之交(관포지교) | 轉禍爲福(전화위복) |

063 老子韓非列傳(노자한비열전)

064 司馬穰苴列傳

065 孫子吳起列傳(손자오기열전)

围魏救赵(위위구조,wéiWèijiùZhào) |
孫龐鬪智(손방투지) |

066 伍子胥列傳(오자서열전)

吴市吹箫(오시취소,Wúshìchuīxiāo) | 掘墓鞭屍(굴묘편시) | 日暮途遠(일모도원) | 心腹之患(심복지환) |

067 仲尼弟子列傳

068 商君列傳

作法自斃(작법자폐) |

069 蘇秦列傳

070 張儀列傳

071 樗裏子甘茂列傳

072 穰侯列傳

073 白起王翦列傳

074 孟子荀卿列傳(맹자순경열전)

075 孟嘗君列傳(맹상군열전)

鸡鸣狗盗(계명구도,jīmínggǒudào) |

076 平原君虞卿列傳(평원군우경열전)

毛遂自薦(毛遂自荐,모수자천,MáoSuìzìjiàn) | 囊中之錐(낭중지추) |

077 魏公子列傳(위공자열전)

078 春申君列傳

079 范睢蔡澤列傳

080 樂毅列傳

081 廉頗藺相如列傳(염파인상여열전)

价值连城(가치연성,jiàzhíliánchéng) | 價重連城(가중연성) | 完璧归赵(완벽귀조,wánbìguīZhào) |

082 田單列傳

083 魯仲連鄒陽列傳

084 屈原賈生列傳

085 呂不韋列傳(여부위열전)

086 刺客列傳(자객열전)

馬生角(마생각) |

087 李斯列傳(이사열전)

088 蒙恬列傳

089 張耳陳餘列傳

090 魏豹彭越列傳

091 黥布列傳(경포열전)

092 淮陰侯列傳(회음후열전)

桀犬吠堯(걸견폐요) |

093 韓信盧綰列傳(한신노관열전)

094 田儋列傳

095 樊酈滕灌列傳

096 張丞相列傳

097 酈生陸賈列傳

098 傅靳蒯成列傳

099 劉敬叔孫通列傳

100 季布欒布列傳

101 袁盎晁錯列傳

102 張釋之馮唐列傳

103 萬石張叔列傳

104 田叔列傳

105 扁鵲倉公列傳

106 吳王濞列傳

107 魏其武安侯列傳

108 韓長孺列傳

109 李將軍列傳

110 匈奴列傳

111 衛將軍驃騎列傳

113 平津侯主父列傳

113 南越列傳

114 東越列傳

115 朝鮮列傳

116 西南夷列傳(서남이열전)

夜郎自大(야랑자대,Yèlángzìdà) 《사기·서남이열전(史記·西南夷列傳)》에서, 야랑은 한(漢)대와 동시대에 서남쪽에 있던 소국들 사이에 있으면서 여타 소국보다는 조금 큰 나라였는데, 그 국왕은 국토가 아주 넓다고 자만하여 한나라 사신에게 ‘한나라와 야랑 중 어느 나라가 더 큽니까?’라고 물었다는 고사에서 유래함. |

117 司馬相如列傳

118 淮南衡山列傳

119 循吏列傳

120 汲鄭列傳(급정열전)

后来居上(hòuláijūshàng) 후진이 오히려 윗자리에 오르다. 인사가 공정하지 못하다.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빼내다. 《사기·급정열전(史記·汲鄭列傳)》가운데, 한(漢) 무제(武帝)가 급암(汲黯)을 중용할 때 공손홍(公孫弘) 등은 관직이 낮았는데, 후에 급암과 공손홍 등의 처지가 뒤바뀌자 급암이 인사가 공정하지 못함을 풍자하여 “폐하의 신하 등용은 땔나무를 쌓듯 하여, 후진이 오히려 윗자리에 오릅니다.”라고 말한 고사에서 유래함 |

121 儒林列傳

122 酷吏列傳

如狼牧羊(여랑목양) 이리에게 양을 기르게 한다는 뜻으로, 탐관오리(貪官汚吏)가 백성을 착취(搾取)함을 비유 |

123 大宛列傳

124 游俠列傳

125 佞幸列傳

126 滑稽列傳

127 日者列傳

128 龜策列傳

129 貨殖列傳

130 太史公自序


註釋書(주석서)

史記集解(사기집해) | 史記索隱(사기색은) | 史記正義(사기정의) |


참조항목

二十四史(24사,èrshísìshǐ) | 十八史略(십팔사략) | 司马迁(사마천,SīmǎQiān) |

列传(lièzhuàn) 열전. 기전체(紀傳體)의 역사서에서 제왕 이외의 저명한 인물의 전기(傳記).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에서 비롯되었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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